처음 클라이밍에 입문하는 사람은
가장 먼저 낙법을 배우게 된다.
완등 후 안전한 착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바닥에 두꺼운 매트가 깔려있더라도 항상 다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추락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자니 소름이 돋으면서 무릎이 시큰거리지만
나도, 다른 사람들도 같은 사고를 반복하지 않도록 남겨두자면,
특히나 다이나믹한 문제가 많은 혜화 알레클라이밍에서
보라색 홀드의 런앤점프 문제를 풀다 (레벨은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 탑을 치던 오른손이 버티지 못하고 빠져버렸다.
한 손을 놓치니 몸이 휙 기울어지며,
그대로 왼발부터 무방비 상태로 떨어졌다.
‼️뚜둑‼️
왼쪽 발로 착지할 때 무릎이 안쪽 방향으로 꺾이며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설상가상 다리가 꺾이는 순간 본능적으로 몸을 돌리면서 머리까지 홀드에 부딪혔지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무릎이 너무 아팠다 (사람들은 머리를 더 걱정함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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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왼다리로 일어날 수가 없어서 매트 밖으로 기어서 내려왔고,
통증이 좀 가라앉길 기다렸다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이때 알레 스텝분이 괜찮은지 확인하시며 얼음팩을 가져다주셔서
가장 아팠던 무릎 안쪽에 대고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20-30분 정도가 지났음에도 아픈 정도가 점점 심해질 뿐이었고
이미 무릎 주변은 추락 직후부터 열이 나면서 부어오른 지 오래였다.
여전히 걸을 수 있는 기미가 안 보여 이때쯤
심각성을 느끼고 친구에게 구급차를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위기 상황에 더 차분해지는 편이라 목소리가 너무 침착했는지
친구는 이 정도로 크게 다쳤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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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클라이밍에서 사설 구급차 연락처를 알려주셔서 바로 불렀지만
구급차에 타서도 근처 응급실에서 전부 거절당해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구급대원분이 여러 군데 연락을 돌려 겨우 받아준 응급실이 서울현대병원이었다.
체온이 떨어졌는지 차 안에 누워 몸을 덜덜 떨기 시작하자 담요를 덮어주셨다.
구급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덜렁거리는 다리로 이송되었고,
친구가 보호자가 되어 짐도 모두 챙겨주고 병원 수속까지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때까지도 엄마한테 다쳤단 말 안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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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무한 대기, 그러다 병원복으로 갈아입고 또 대기
엑스레이 찍고 또 대기, 마침내 불행인지 다행인지 뼈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다음날이 정형외과 전문의가 진료하는 날이니 하루 입원하고 진료를 보란다.
이대로는 거동이 불가능하니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부어서 형체를 찾아볼 수 없는 무릎과 그 아래 늘어진 다리를
보호하거나 고정시켜주는 조치가 전혀 없어 하룻밤을 고문 속에 보내야 했다.
잠이 겨우 들라 치면 몸에 힘이 빠지며 다리가 옆으로 벌어지고,
그러면 또 무릎과 다리가 너무너무 아파서 깰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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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서울현대병원에서 다음날 MRI까지 촬영하기로 했고,
바로 수술할 수 있다는 말에 자정부터 금식까지 해야 했지만
(이제와 생각하면 정말 성급한 진단이었음)
복잡한 부위인 만큼 큰 병원에서 진료를 다시 받자는 가족들 의견도 있었고
오전 내내 방치되는 느낌에 병원에 대한 신뢰를 잃은 관계로
무릎 명의가 있다는 경희의료원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병원에 대한 정보는 네이버 '십자인대 환자 모임'이라는 카페와
이미 전방십자인대와 반월상 연골 파열로 수술 경험이 있는 지인 도움을 받았다.
서울에는 십자인대 4대 명의로 꼽히는 (삼성, 경희, 건국, 명지) 교수님들이 있었고
퇴원 수속 후 구급차를 불러 집에서 가까운 경희의료원으로 다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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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날을 돌이켜보면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이었다.
첫째로, 다른 부위의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운동 초기부터 라운드 숄더의 영향인지 오른쪽 어깨가 자주 아프곤 했다.
당시에도 염증이 재발해 소염제 처방과 함께 2주 정도 운동을 쉬라는 소견이 있었고
그 기간이 충분히 지났음에도 데드나 다이노로 잡는 동작에는 어깨 통증이 있었다.
그렇게 무리하게 클라이밍을 하던 나는 결국 오른손 데드로 탑을 잡다 놓쳐 추락하게 되었다.
둘째로, 잠이 부족했다.
다시 말해 낙상을 피할 수 있을 만한 집중력과 순발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컨디션이었다.
몇 주 전부터 미라클 모닝을 시도하며 아직 적응 중인 매우 피곤한 시기였고
나의 기상 시간은 대략 5시 반, 취침시간은 10시 반이었다.
사고가 난 시각이 8시경... 내 몸은 이미 취침을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클라이밍이 즐겁고 재밌어서 더 자주 무리해서 하려다
다시 할 수 있을지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여전히 클라이밍은 빠른 회복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되지만
다시 암장에 가는 날이 온다면 항상 부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기억하고,
나의 컨디션을 최우선으로 살펴 이번처럼 무모하게 다치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에게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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